Tradition

오키나와의 역사를 둘러보는 여행

1879년에 오키나와현이 되기까지 450년 간, 오키나와는 류큐왕국이라는 독립국이었다. 류큐왕국은 대항해 시대에 앞장서 동아시아의 무역 거점으로서 화려한 번영을 구가했다고 한다. 교역을 통해 번영하기 위해서는 우선 타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즉 조화의 정신을 중요시하고 관계국과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했다. 평화가 유지되어야 독자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문화를 구축할 수 있다.

이를 역사 속에서 실제로 겪은 오키나와는 역사로부터의 배움의 중요성, 평화의 존엄성을 설파해 왔다. 류큐왕국이 사라졌을 때도, 태평양전쟁 후 미국의 통치 하에 있을 때도, 정치적인 문제가 폭발할 것 같은 국면에 서 있을 때도, 오키나와 사람들에게는 항상 ‘눈 앞의 현재와 조화를 이루고, 평화를 최우선시 하며 살아간다’는 정신이 있었다. 그 정신이 지금의 오키나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오키나와가 걸어온 역사와 그 역사가 키운 평화 사상 및 정신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힌트가 될지도 모른다. 오키나와의 역사를 배우고 평화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설을 둘러보는 여행은 어떨까.

1만 8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자연・역사・문화의 여행으로 초대하는 오키나와 현립박물관・미술 관

유이레일 「오모로마치」역 하차, 도보 약 10분 거리에 있는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미술관은 오키나와 성(구스쿠)를 형상화해 디자인한 시설로, 오키나와의 자연, 역사, 문화, 예술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계절별, 테마별로 기획전이 열리기 때문에 언제든지 방문해도 새로운 발견을 경험할 수 있지만, 오키나와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려면 상설전시(종합전시)를 방문하는 것이 좋다. ‘화석시대’, ‘패총시대’, ‘류큐왕국시대’, ‘사쓰마에 의한 류큐 지배와 왕국의 멸망’, ‘오키나와의 근대(류큐 처분・태평양 전쟁 중)’, ‘미국의 점령(전후, 1972년 오키나와 반환까지)’, ‘미래로’로 크게 나뉘어져 있고, 시대마다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따라가며 오키나와가 걸어온 역사를 시각적으로 한 눈에 볼 수 있는 구조이다.

450년 동안 지속된 류큐왕국은 작은 나라이면서도 각국에 다리를 놓듯이 배를 오고 가게 하고, 인근 국가에 대해 예를 다하여 우호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번영을 이루었다. 이는 ‘만국진량(세계의 가교)’의 이념이며, 오키나와가 독자적인 문화와 역사를 일구고 쌓아온 증거이기도 하다. 박물관에는 그 이념을 상징하는 ‘만국진량의 종’도 전시되어 있으며 개관 중에는 매시 정각과 30분에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종은 전쟁 중의 군사적 반출도, 철의 폭풍의 전화(戰禍)도 면한 것으로 15세기의 류큐왕국을 상기시켜 주는 아이코닉한 아이템이기도 하다.

박물관의 전시 관람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의 역사를 배울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태평양 전쟁에서 받은 영향이다. 실제로 오키나와현 내, 특히 본섬 남부를 방문하면 태평양 전쟁의 흔적과 위령탑, 피난호(GAMA)를 많이 볼 수 있으며,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를 실감해 봄으로써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전쟁의 역사와 평화에 대한 염원을 느낄 수 있다. 박물관 다음 코스로 실제 전쟁 유적을 방문해 보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전쟁과 평화에 대해 배우는 장소, 오키나와현 평화기념공원

1945년 3월 26일부터 6월 23일까지 동안, 오키나와도 태평양 전쟁에서 「철의 폭풍」이라고 불릴 정도로 격렬한 전장이 되어 전사자 수가 24만 여명에 달했다. 그 참사에 대해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오키나와현 평화기념공원이다.

평화기념공원은 이토만시에 있는데, 나하 중심지에서 차로 약 30분정도 내려가면 된다. 공원이 있는 지역은 오키나와 전투 종식의 땅으로 알려져 있으며, 공원 내부에는 오키나와 전의 사진과 유품등을 전시한 평화 기념 자료관, 오키나와전에서 사망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국적과 군인, 민간인 구별없이 새긴 ‘평화의 주춧돌’, 전사자들의 위령을 달래고 영원한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 기념상이 안치되어 있는 ‘오키나와 평화기념당’ 등이 있다. 또한 마부니 언덕 위에는 국립 오키나와 전몰자 묘원과 부현, 단체의 위령탑 50개가 건립되어 있어 이 곳도 국내외 관광객을 비롯하여 위령단과 수학여행단 등도 많이 찾는다.

평화의 주춧돌 안에 있는 광장 중앙에는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그림을 형상화한 분수대가 있고 그 중앙에는 ‘평화의 불’이 켜져 있다. 이 불은 오키나와 전투에서 최초로 미군이 상륙한 자마미손아카 섬에서 가져온 불로, 피폭지 히로시마시의 ‘평화의 등불’, 그리고 나가사키시의 ‘먕세의 불’ 을 합친 것으로 꺼지지 않고 켜져 있다.

그 외 오키나와 역사와 평화에 대해 배우는 장소

오키나와현 평화기념공원에서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히메유리 탑과 히메유리 평화기념자료관이 있다. 이 곳은 오키나와전 당시 간호요원으로 동원된 15세에서 19세의 여학생 222명과 교사 18명이 ‘히메유리 학도대’ 에 동원된 시설로, 평화 학습의 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자료관에는 점철된 수기를 읽을 수 있는 코너가 있는데(영어로도 일부 읽을 수 있음) 심각한 얼굴로 읽거나 울먹이는 방문자를 볼 때면, 히메유리 학도대가 남긴 목소리는 분명히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전쟁을 아는 것은 평화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그 마음을 키우는 것이기도 하다.

또, 도미쿠스쿠시에 있는 구 해령사령부 참호도 실제 사용된 참호를 방문하여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어, 역사와 평화에 대해 배우기에 적합하다. 일본 해군 설영대에 의해 만들어진 사령부 참호로 당시에는 450미터였는데, 현재는 사령관실을 중심으로 300미터가 복원되어 그 부분을 방문할 수 있다. 많을 때는 약 4,000여명의 일본 병사가 수용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사령관실의 벽과 천장에는 장병들이 수류탄으로 자결했을 때 흩날린 파편 흔적이 남아 있어 전쟁의 참혹함을 조용하고 무겁게 말해 준다.

오키나와 역사를 배워 보면 ‘평화’가 항상 키워드처럼 숨어있다. 세계의 가교로서 ‘만국진량(万国津梁)’을 내세운 오키나와가 전쟁의 시간을 겪고 더욱 더 영원한 평화를 위해 평화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의 의의가 오키나와 역사를 둘러보는 여행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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